[편집자주] 세상엔 지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단 한 명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결혼, 그리고 가족도 그렇다. 같은 결혼 생활도 없고, 같은 가족도 없다.
모두 제각기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사람들. 보편성의 시선을 깨고, 가족이라는 참된 의미 아래 묶인 이들을 바라본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부쩍 ‘가족’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까지 가족의 일상, 구조, 역할, 심지어 위기까지 관찰하며 다룬다.
1인 가구, 핵가족이 많아지는 사회적 현상과 달리 가족의 본질 문제와 삶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중 가족의 이야기들을 담은 네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엄마는 윤시내의 오랜 팬이자 이미테이션 가수다. 엄마는 늘 가수 윤시내처럼 짧은 머리의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색깔의 털 옷을 입는다.
딸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마땅찮지만, 주목받고 싶어 하는 건 엄마를 닮았는지, 인터넷 VJ 겸 크리에이터로 활동한다. 엄마와 딸은 같은 집에 살지만, 철저히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남남처럼 살고 있다.
앞서 <경아의 딸> 모녀가 서로에게 관심이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였다면, 여긴 좀 다르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남보다도 못한 사이. 그게 엄마 연시내(오민애)와 딸 짱하(이주영)의 사이다.
세상에 이런 모녀가 또 있을까.
연시내와 짱하의 관계가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거다. 어찌 됐건 그들은 모녀이고, 세상에 둘밖에 없는 한 가족일 테니. 그렇지 않아도 영화 후반부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과거 짱하가 어릴 적, 연시내는 그때도 윤시내의 ‘광팬’이었다. 윤시내의 TV 무대를 녹화하여 돌려보는 게 낙이었던 연시내. 그런데 짱하는 윤시내의 무대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에 자기 모습을 덧씌워 녹화했다.
윤시내의 영상은 지워지고, 남은 건 짱하의 재롱뿐. 늦은 밤 윤시내 무대를 시청하던 엄마는 비디오테이프에서 짱하의 모습이 나오자 크게 실망한다. 심지어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짱하가 목격한다.
그때부터 짱하는 엄마에 관한 관심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엄마는 나보다 윤시내를 더 좋아하니까. 윤시내에게만 더 관심이 있으니까. 내가 무얼 해도 엄마는 나를 봐주지 않으니까.
짱하는 자신이 유튜버가 되어도, 어떤 사고를 쳐도 엄마는 딸에겐 일말의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짱하는 윤시내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결국 엄마의 거울이었던 걸까. 윤시내를 따라 해 원조 가수의 관심을 받던 엄마에 이어 딸 짱하도 유튜버가 되어 세상의 관심을 갈구한다.
누군가를 따라 하고, 보여지는 가짜 삶에 충실한 엄마를 무시했지만, 자신 역시 유튜브 콘텐츠를 위해 전 남자친구도 찾아가고, 심지어는 엄마의 삶을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한다.
이미테이션 가수가 되어서까지 윤시내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던 엄마. 그리고 자극적인 콘텐츠로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딸. 두 사람의 삶은 다른 듯 닮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정녕 연시내가 원했던 게 윤시내의 관심이었을까. 연시내는 도대체 왜 윤시내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저 윤시내는 엄마가 젊은 시절 동경했던 대상으로서,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많은 인물 중 한 명이지 않을까. 영화 내내 품던 궁극적인 의문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에선 엄마가 윤시내를 왜 좋아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가 ‘연시내와 윤시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영화는 연시내와 윤시내의 관계를 수단으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조명한다.
영화 중후반, 짱하가 자신을 몰래 라이브 방송에 송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연시내는 배신감을 느끼고, 두 사람은 크게 싸우게 된다. 그러면서 감춰놨던 적나라한 감정을 드러낸다. 엄마는 딸에 대한 진심을, 딸은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특히 늘 윤시내만 바라봤던 엄마는 사실 딸을 위해서 살았다는 걸 얘기한다. “넌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 진심의 증거는 오랫동안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던 비디오테이프다. 윤시내가 아닌 딸의 재롱이 담긴 그 비디오테이프.
당시 엄마는 좋아하던 가수의 무대를 못 보고 딸의 장난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삶에서 소중한 건 윤시내의 무대가 아니라, 지나가면 다시 볼 수 없는 딸의 어린 시절이라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짝퉁 가수’ 연시내로 살아왔지만, 그 속에는 자기 삶과 딸을 위해 살아온 엄마가 있었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엄마와 딸은 늘 그랬듯 티격태격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그 사람만의 삶이 있을 거예요.”
영화 말미, 진짜 가수 윤시내가 연시내 몰래 딸에게 남긴 한 마디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연시내는 왜 윤시내를 좋아하게 됐고, 윤시내는 왜 콘서트를 앞두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윤시내가 사라짐으로써 연시내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딸과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영화는 세상에 이런 ‘귀여운’ 모녀도 있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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